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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데릭]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자유로운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그것을 위해 ‘신뢰’라는 자산이 쌓일 수 있도록 조직을 설계합니다”

대표 인터뷰 | 김현석 (데릭)

Q. 회사를 만든 이유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김현석입니다. 회사에서는 데릭이라고 불러요.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사소한 사건 때문이었어요. 신입사원 시절, 보다 나은 방법이 있는 것 같아서 직속 상사에게 이야기했더니 너는 신입사원이니까 결정도 하지 말고 책임도 지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순간 깨달았어요. ‘아 나는 남 밑에서는 일 못하겠구나.’ 저는 큰 권한과, 큰 책임을 가지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싶었지만, 신입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회사가 없어서 결국 창업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저는 저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면서 성장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런 회사를 만드려다 보니 꼭 필요한 것이 ‘신뢰’더라고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신뢰는 말로 생기지 않아요. 구조와 시스템,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쌓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이 과정을 설계하는 데 가장 에너지를 많이 쏟고 있어요.
Q. 구성원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세요?
자주 싸워요. 감정적인 말싸움이 아니라, 방식에 대한 충돌이죠. 신입 때는 ‘대표랑 이렇게 싸워도 되나?’ 고민하던 친구가, 지금은 저랑 정면으로 붙어요. 회의에서 ‘그 방식은 더 비효율적입니다’라고 바로 말해요. 저는 그걸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조직 안에서 충돌을 겪어본 사람은, 어디서든 자기 의견을 낼 수 있거든요.
신뢰는 이런 데서 생겨요. 싸울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저 친구가 일을 망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라는 기본적인 믿음. 그 믿음 위에서야 비로소 자유가 작동해요. 이런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 자체가 신뢰를 설계하는 일이에요.
Q. ‘의사소통은 수평적으로, 결정은 수직적으로’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오해해요. ‘결국 대표 마음대로 하는 거 아니야?’ 생각하기 쉽죠. 실제로 예전엔 그런 오해를 받은 적도 있어요.
근데 이건 ‘책임’의 구조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한 직원이 인쇄 사고를 낸 적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손바닥만 한 책자를 요청했는데 A4로 잘못 인쇄된 거죠. 당황해서 내려와서 울먹이길래, 그냥 말했어요. ‘새로 주문하고 다음부턴 체크리스트 만들죠. 어쨌든 책임은 내가 지는 거니까.’
그 친구는 그 사건 이후로, ‘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결정을 내리는 거구나’를 체감했던 것 같아요. 조직 안에서 책임이 불분명하면 결정도 흐려지고, 결국 신뢰도 무너지거든요. 단순히 다독이는 게 아니라, 어떤 실수든 학습으로 프레임을 바꾸는 것,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구성원 간 신뢰는 단단해집니다.
Q. 그렇다면 ‘결정’은 어떤 기준으로 진행하시나요?
우선, 얼마나 남기느냐겠죠? 저는 돈 계산에 꽤 냉정한 편이에요. 남길 수 있을 땐 남겨야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어떤 프로젝트는 ‘돈이 남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남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어요. 예전에 한 디자이너가 전시장에 고가의 라이트부스를 쓰자고 제안했어요. 단가가 높아서 라이트부스를 쓰면 정말 100만원도 안 남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경기도지사님이 우리 행사장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하려면, 주목을 끌 수 있는 구조물이 필요합니다.’
납득이 됐어요. 이번에는 수익보다 임팩트가 우선이라고 판단했고, 흔쾌히 허락했어요. 물론 매번 그럴 순 없어요. 남길 땐 더 똑똑하게 남겨야 해요. 중요한 건 목적이 뭐냐는 겁니다. 그리고 목적이 서로 일치하면, 직원의 판단을 신뢰하고 맡길 수 있어야 하고요.
Q. 본인의 가장 독특한 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목적만 달성하면,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LED 비율이 안 맞아서 화면이 깨졌던 적이 있어요. 보통은 스케일러라는 기계를 써서 맞추는데, 그게 300만 원짜리거든요? 저는 그냥 원본 영상을 반대로 찌그러뜨렸어요. 해결! 5초 만에 300만 원을 벌었다고 직원과 웃어 넘겼던 기억이 나네요.
정석을 아는 건 중요해요. 하지만 그걸 고집할 필요는 없죠. 핵심은 ‘목적이 무엇인가’를 계속 질문하는 거예요. 유연한 문제 해결 방식이 반복되다 보면, 팀 안에서는 ‘목적을 위한 답을 내는게 중요하다, 다른 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서로 간의 신뢰가 생깁니다. 이 과정에서 꽃피는 창의력은 덤이고요.
Q. 직원들이 놀랐던 당신의 결정이 있다면요?
직원들이 명찰 자르고, 짐 나르고, 포장까지 다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소위 말하는 노가다 작업이요. 그런데 저는 어느 순간, ‘이건 우리 직원들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어요. 이후에는 단기 인력을 쓰고, 직원들은 기획이나 커뮤니케이션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일에 집중하도록 배분했어요. 성실함은 미덕이지만, 중요한 걸 못 하게 만드는 성실함은 조직에 독이에요.
구성원이 ‘이 일을 내가 꼭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고, 역할을 명확하게 분배해주는 것도 결국, 너를 무의미하게 착취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신뢰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죠.
Q. 가장 싫어하는 건 뭔가요?
비효율. 딱 세 글자로 대답할 수 있겠네요. 같은 말을 세 번 이상 반복해야 하는 구조, ‘원래 하던 방식’이라 그냥 그대로 가는 일들, 다 못 견뎌요.
어떤 날은 굿즈 400개를 포장해야 했는데, 저는 포장은 못 해도 (*손이 느려서 항상 혼남) 구조는 볼 수 있으니까. 단계를 나누고 프로세스를 몇 번 바꿨어요. 처음엔 스탭들이 혼란스러워했지만, 결과는 명확했어요. 훨씬 빨리 끝냈어요.
인내할 시간에 구조를 바꾸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저는 잘 압니다. 그렇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결국 ‘이 사람과 일하면 낭비가 없다’는 신뢰가 생겨요. 신뢰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회사는 모두에게 좋은 회사는 아닐 거예요. 규칙이 적고, 각자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솔직히 누군가에게는 버거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일하고 싶은 사람, 신뢰받으며 성장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회사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사람들과 오래 가고 싶어요.